독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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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_류시화독서/시 2023. 3. 27. 15:01
비밀_류시화 내가 세상에 등을 돌렸다고 당신은 말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냉정하다고 당신은 느낀다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열정을 찾은 것이다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당신은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현실에 눈뜬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당신은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노래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결론 내린다 그렇지 않다 나는 가슴의 음계를 따라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의 즐거움을 잃었다고 당신은 단정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기쁨을 가슴에 품은 것이다 내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나무란다 그렇지 않다 나는 절대 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판단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더 깊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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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_김덕남독서/시 2023. 3. 23. 07:49
냉이_김덕남 혀 같은 새순 나와 톱니가 되기까지 한 생을 엎드린 채 푸른 별을 동경했다 서릿발 밀어 올리는 조선의 저 무명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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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_김용택독서/시 2023. 3. 21. 08:30
나무_김용택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서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 강물은 깊어졌어 한없이 깊어졌어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 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 그냥,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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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아기_이해리독서/시 2023. 3. 18. 08:26
텅 빈 아기_이해리 유모차가 간다 목련시장 지나 하나로마트 지나 횡단보도 건너 작고 앙증맞은 바퀴를 돌돌돌 굴리며 간다 햇살이 아기눈동자같이 천진하고 맑은 봄날 유모차 손잡이엔 으레 할머니들이 붙어 있다 손주 태우고 가나 보다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빈 유모차, 아기가 없다 아기 없는 유모차가 간다 텅 빈 아기가 간다 텅 빈 아기 안에 자동차 소음이 한 바구니 하이마트가 틀어 놓은 전파 한 바구니 출산은 줄고 고령이 늘어난다 뉴스 한 바구니 노파들은 지팡이 대신 의지하고 가지만 노구를 때 없이 부축하는 저 젖먹이는 등이 무거워 옹알이도 못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