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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_박두규
33년 동안 물밑을 헤엄쳐 왔다
언젠가부터 나이 60이 되면 수면 위로 올라가
뭍에 첫발을 딛고 늘 꿈꾸던 하늘을 보며
오래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고 싶었다
잘 마른 한지처럼 바싯거리는 소리를 내며
책장 넘기는 기분을 한껏 내고 싶었고
가난한 어부의 함석지붕에 널려 있다가
어느 명절에 잘 쓰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한순간 요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듣고 싶었고
어머니의 젖을 물고 바라보았을
첫날의 경이로운 하늘을 기억해 내고 싶었다
글을 처음 익힐 때처럼 책을 읽고
시를 처음 쓸 때처럼 펜을 잡고 싶었다
얼마나 더 이승의 밥그릇을 훔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 한 세월이 또 온다반응형'독서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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