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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단정히_박노해
초등학교 입학식 날
낡은 옷을 빨아서 풀을 먹이고
숯불 다리미로 다려 입혀주며
어머니가 당부하셨다
아들아, 오늘부터 넌 어엿한 학생이다
늘 마음을 밝게 하고 시선을 바로 해야 쓴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몸가짐과 옷차림마저 단정치 못하면 그건 네 탓이다
가난과 불운이 네 눈빛을 흐리게 하지 말거라 이제 너는 스스로 헤쳐 갈 창창한 학생이다
그날 아침 혼자서
타박타박 황톳길을 걸어 입학식에 가던 나는, 학생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걸어 나가던 나는, 떨리고도 환한 마음으로 입술을 꼬옥 물었다
그날 이후 아무리 험한 조건에서도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을 떠올려왔다
밥을 먹을 때도 말을 할 때도 글씨를 쓸 때도
걸음을 걸을 때도 늘 반듯이 하고자 애써왔다
가난하고 힘이 없고 고달프다 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내면의 빛과 소박한 기품을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나 어찌 되겠는가
내 고귀한 마음과 진정한 실력과 인간의 위엄은
어떤 호화로운 장식과 권력과 영예로도
결코 도달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으니
늘 단정히
늘 반듯이
늘 해맑게